"점수 묻기 전 아이 어깨 두드려 주세요."
13일은 2008
대학수학능력시험일. 시험이 끝나면 대입준비에 여념없던 수험생은 물론 함께 마음 졸이던 가족들도 모처럼 홀가분함을 느낄 수 있는 날이다. 동시에 시험결과에 대한 윤곽이 드러나면서 희비가 엇갈리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매년 이맘 때쯤이면 결과에 낙담한 나머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학생들도 있는 만큼, 수능 후 공백기에 가족들의 더 많은 관심과 배려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특히 시험이 끝나자마자 점수를 묻기보다는 "수고했다"며 어깨를 두드려 주는 사랑이 자칫 시험결과로 좌절에 빠지기 쉬운 수험생들을 붙잡아 줄 수 있다고 말한다.
▶시험 전부터 미리 관찰해야…완벽주의적 성향도 위험군
수능시험은 누구에게나 스트레스 요인이 되지만, 시험 후 잘 관찰해야 할 요주의 그룹은 평소 우울증 증세가 있었거나 완벽주의적인 성격의 학생들이다.
세브란스병원 소아청소년정신과 송동호 교수는 "특히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청소년의 경우 대부분 평소 우울증을 앓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청소년기 우울증의 원인은 성적문제 외에도 주변의 기대에 대한 부담감, 부모의 간섭과 억압, 가정불화, 또래집단의 폭력이나 외톨이 등 다양하다. 평소 주변 일에 흥미가 없고 먹거나 자려 하지 않는 등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면서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등 자아존중감이 저하된 학생이라면 우울증을 의심해 볼 수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특히 수능 후 분노와 우울, 무기력감이 더욱 심해지면서 방안에만 틀어박혀 있다거나 폭식, 거식, 늦은 귀가 현상이 더욱 심해진다면 자살의 위험도도 높아지므로 특별한 관리가 필요하다. 송 교수는 "최근 들어 경쟁 위주의 사회에서 예민한 청소년들이 성적이 조금만 떨어져도 이를 인생 전체의 실패로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럴 경우 난관을 해결하는 방책으로 충동적으로 자살을 선택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시험결과가 좋아도 소위 '성공 후 허탈감' 때문에 방황하는 경우도 많으므로 평소와 다른 모습이 보이는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부모부터 수능점수에서 벗어나야…규칙적인 생활습관 중요
전문의들은 부모들이 결과에 실망하기 전, 먼저 자녀의 실망감을 이해해주고 죄책감을 갖지 않도록 하라고 조언한다. 송 교수는 "수능 점수가 안 좋은 것이 인생 전체의 실패가 아님을 알게 하고 점수에 대해 책망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수능 후 갑자기 긴장이 풀리면서 흐트러지는 생활을 바로잡아줄 필요가 있다. 불규칙한 식사 및 수면습관이 우울증을 악화시키기 때문이다. 삼성서울병원 가정의학과 이정권 교수는 "무엇보다 규칙적 생활리듬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하루 7~8시간의 수면과 규칙적인 식사를 하도록 하고 적당히 몸을 움직이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수능 후 공백기에 술이나 흡연, 약물 등에 빠지기 쉬우므로 평소 관심이 있던 취미나 운동을 시작하도록 유도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만일 시험 후 분노와 우울의 감정이 2~3개월 지속된다면 전문의를 찾아가 상담을 받는 것이 좋다. 이 교수는 "가끔 수능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할 경우 아이보다 부모가 더 스트레스를 받아 병원을 찾는 경우도 있다"면서 "시험이 끝났다고 해서 크게 실망하거나 반대로 무작정 아이를 방치하지 말고 함께 수능 후 공백기를 슬기롭게 지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유지현 기자(prodigy@herald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