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칼럼] 사주당(師朱堂) 이 씨 /신명호
주자를 스승삼은 사주당 이씨는 최상의 교육법으로 태교를 꼽았다
사임당(師任堂) 신 씨는 아마도 조선시대를 넘어 한국사 5000년을 대표하는 여성 중의 한 명으로 손색이 없을 것이다. 이유는 뛰어난 예술 작품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율곡 이이 같은 훌륭한 아들을 두었기 때문이다. 그 사임당 신 씨의 인생을 지탱한 가치관은 바로 사임당이라고 하는 당호(堂號) 자체에 들어 있다. 사임당이란 태임(太任)이라고 하는 여성을 스승으로 삼겠다는 다짐이었다. 태임은 중국 역사상 이상적인 국가로 존중되는 주(周)나라의 건국시조 문왕(文王)의 어머니였다. 조선의 태임이 되겠다는 다짐과 노력으로 사임당 신 씨는 훌륭한 아들을 두었고 뛰어난 예술 작품들을 남겼다.
조선시대에 사임당 신 씨처럼 역사상 위인을 스승으로 삼겠다고 다짐한 여성이 또 있었다. 조선 후기의 인물인 사주당(師朱堂) 이 씨라는 여성이었다. 사주당이란 주희(朱熹)를 스승으로 삼겠다는 다짐이었다. 여기서 특이한 점은 주희가 여성이 아니라 남성이라는 사실이었다. 주자학을 정립한 주희는 조선시대 남성 유학자들로부터 무한한 존경을 받았다. 조선시대의 국가와 사회는 주희가 정립한 주자학을 바탕으로 조직되고 운영되었다. 조선시대 양반들은 주희의 말씀 하나하나를 진리 자체로 신앙했다. 반면 현대인들로부터는 조선시대 여성들을 봉건 이데올로기로 얽어맨 장본인이라는 혹평을 받기도 한다. 그런 주희를 사주당 이 씨는 자신의 스승으로 삼겠다고 당호에까지 드러냈다. 사임당 신 씨가 조선의 태임이 되려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사주당 이 씨는 조선의 주자가 되려 했다. 사주당 이 씨는 주자의 무엇을 그리도 배우고자 하였을까?
사주당 이 씨는 세상을 떠나면서 유언으로 자신의 무덤에 함께 넣을 물건 세 가지를 지정했다. 첫 번째는 친정어머니로부터 받은 편지묶음이었고, 두 번째는 남편이 저술한 성리문답(性理問答)이었으며 마지막 세 번째는 자신이 직접 베껴 쓴 율곡 이이의 격몽요결(擊蒙要訣)이었다. 사주당 이 씨가 주자에게 배우려던 정수가 이 세 가지에 들어 있었다. 친정어머니로부터 받은 편지묶음에는 부모 자식 간의 자애와 효도가 들어 있었다. 남편이 저술한 성리문답에는 인간과 부부간의 도리가 들어 있었다. 그리고 격몽요결에는 어린 아이들에 대한 교육철학이 들어 있었다. 사주당 이 씨는 한평생 자식으로서 또 부인으로서 그리고 어머니로서 모름지기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주자학을 통해 배우고 실천했던 것이다. 사주당 이 씨는 마치 자신의 인생에서 알곡을 추수해 거두어들이듯 이 세 가지를 거두어 무덤에 들였다.
그렇지만 사주당 이 씨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유산이라 할 만한 저술은 무덤에 들이지 않았다. '태교신기(胎敎新記)'라고 하는 저술이 그것이다. 사주당 이 씨는 자신이 낳은 자녀들이 세상에서 번창하기를 바란 것처럼 자신이 저술한 태교신기가 세상에서 널리 읽히기를 바랐다. 태교신기는 많은 부분에서 주자의 '소학(小學)'을 닮았다. 주자는 인간에게 필요한 기초교양을 쉽게 알려주기 위해 소학을 편찬했다. 주자는 소학의 첫 부분에 '태교(胎敎)'를 배치했다. 인간이 알아야 할 기초교양 중에서도 첫 번째 교양이 바로 태교 교양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소학에 실린 태교는 매우 소략했다. 주자는 비록 위대한 학자였지만 남성이었기에 태교에 대해 깊이 있는 체험을 할 수 없었다.
사주당 이 씨는 주자 같은 대학자도 잘 알지 못한 태교의 이론과 실제를 자신이 정리해내겠다는 당찬 포부로 태교신기를 저술했다. 태교신기란 말 그대로 태교에 관한 새로운 기록이라는 뜻이다. 기왕의 태교 이론을 단순하게 종합한 것이 아니라 사주당 이 씨 스스로 생각하고 터득한 내용들을 실었기에 태교신기라고 하였다. 사주당 이 씨는 주자를 스승으로 모셨지만 태교에 관해서는 스승을 능가해 새로운 경지를 개척해낸 위대한 학자였다. 사주당 이 씨는 교육을 의사에 비유했다. 훌륭한 의사는 병이 들기 전에 치료한다. 마찬가지로 훌륭한 교육은 태어나기 전에 가르친다.
사주당 이 씨는 스승의 10년 가르침이 어머니의 10달 태교만 못하고, 어머니의 10달 태교가 부모의 하룻밤만 못하다고 하였다. 자녀 교육에 관심을 갖는 학부모들이 거듭거듭 되새겨볼 만한 가르침이 아닐 수 없다.
부경대 교수
입력: 2009.11.25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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