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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링크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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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039회 작성일 15-12-31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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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드링크 할머니
  작성자 : 모란성심 … (61.77.227.168)     연락처 :      이메일 : house747@empal.com    날짜 : 03-06-16 12:01     조회 : 1113    

원주 김윤갑 원장님의 글을 허락없이 올립니다.^^

모란성심 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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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링크 할머니


한의원에 오실 때마다 드링크를 사오시는 할머니가 있다. 거의 한 달에 한 번이나 두 달에 한 번 꼴로 나타나서 침을 맞고 가시는 편인데, 이번 달에는 박카스 한 박스와 함께 나타나셨다. 지난 달에는 델몬트를 사오셨던 걸로 기억한다. 침을 여러 날 맞으시는 것도 아니고 한 두 번 맞고 그만이신 편이니 확실히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올해로 여든 한 살이신데 깡마르시고 강단이 있으신 편이다. 침을 자주 맞고 싶어도 오라는 데가 많아서, 바빠서 못 맞으신다고 한다. 경로당 다니실 일 말고 무슨 일이 그리 바쁘신지 궁금할 수밖에 없다. 노인 대학에서 공부하시느라고 바쁘신가 물어보니 그것도 아니라고 한다. 이성 교제 관계로 바쁘신 노인들도 가끔 있으시긴 하지만 여든이 넘으신 연세로는 아무래도 그것도 무리이실 것 같고 해서 점점 더 궁금해진다. 지난달에도 스무고개만 하다가 말았는데, 이번에는 반드시 해답을 얻으리라고 작정하고 다시 스무고개를 연장했다.

오라는 데는 없는데, 갈데는 많다는 이 할머니. 양로원에 봉사활동을 다니고 계셨다. 당신 한 몸에 기력이 남아있을 때까지는 남을 도우면서 살아가시리라고 한다. 불교 노인회 봉사회장과 적십자 부녀 봉사회장을 두루 맡고 계신터라 그리 바쁘신 것이다. 봉사 활동 요청이 오는대로 출동하셔서 봉사를 하시는데 원주에서 서울까지도 원정을 가신다고한다.

양로원에 봉사활동을 가게되면 대개 하루 이틀씩 묵었다가 오신다. 서울에서도 외곽에 위치한 불광동에 있는 양로원에 봉사를 가실 때는 일주일씩 묵다가 오실 때도 많다. 다른 젊은이들은 집안 일 때문에 오래 묵지 못하니 당신이라도 묵다가 오신다는 것이다. 함께 묵으면서 생활을 해봐야 음식이 나오는 상태라든지, 난방 상태라든지, 청결 상태 등을 확인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양로원에서 묵다보면 노인들끼리 서로 매일 싸우는 것을 본다. 하루 종일 싸우는 일이 그치는 날이 없다. 싸우는 이유는 대부분이 네것, 내것을 가리다가 시작된다. 공동생활을 하시는 분들이라 네것 내것의 구분이 없을 것 같은데도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사탕 깡통이 네 차지였느니, 물파스가 내 차지였느니를 가리며 시비가 벌어지게 된다. 그래서 노인네들의 사물함마다 온갖 자질구레한 잡동사니로 가득하다. 이렇게 다투는 노인들을 달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자꾸 웃어드리면 된다. "아 저게 내 쇼핑백인데 말이야!"하셔도 "아! 네에, 그렇죠"하면서 웃어드리고, "아니야! 이건 내 쇼핑백이여!"하셔도 "아! 네에, 그렇죠"하면서 맞장구쳐드린다. 두 분 말씀이 다 맞다고 거들어드리다보면 싸움은 지레 시들해지고 셋이 함께 웃고 만다. 분쟁을 치료하는 데는 웃음같은 명약이 따로 없다.

양로원에는 굶는 노인들도 의외로 많다. 평소에는 잘 드시다가도 기분이 언짢으시면 라면이 나왔다고 안드시고, 국수가 나왔다고 안드신다. 입맛이 떨어지실까봐 가끔씩 별식을 준비하는데, 오히려 그걸 탓하시는 경우도 많다. 라면이 나왔다고 수저를 놓으시는 노인네들에게 부랴부랴 밥을 안쳐서 올려드리면 삐쳐서 그런지 밥도 안드신다. 작은 일에 쉽게 노여워하시는 분들이 의외로 많다. 이럴 때도 역시 웃으면서 슬며시 수저를 쥐어드리는 것이 좋은 치료법이 된다.

딱한 노인들도 많다. 환갑을 조금 넘어섰는데도 전혀 운신을 하지 못하는 환자들을 보면 너무나 안스럽다. 당신의 맏딸 또래 정도의 환자를 목욕시켜주면서 나이가 든다는 것과 건강하다는 것에 대해서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하게 된다. 아직도 그들을 도울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감사할 뿐이다.

양로원 봉사를 다녀오면 온 몸에서 냄새가 난다. 매일같이 씻겨드리고 목욕시켜드리고 하는데도 무슨 이유에서인지 양로원에서는 양로원 특유의 냄새가 사라지지 않는다. 봉사활동을 마치는 날에는 목욕탕에서 일정을 마무리할 수밖에 없다.

지난 석탄일에는 인근 양로원에 떡 두 말을 해다가 날랐다고 한다. 말문이 터진 것을 기화로 내쳐 물었다. "비용이 얼마나 드셨어요?" 십 만 원으로 삼십여명이 잘 먹었다고 한다. 당신께서 무슨 돈이 있어서 그리 하셨느냐고 다시 여쭈어보았다.

"택시도 안타고 버스도 안타고 종일 걸어다니면 저절로 돈이 모이지"
"내 편하면서 남 돕자면 못 도와"
"내가 아끼고 고생한 보람으로 남을 도와야지"
아직까지도 내 귓가에 생생하게 맴도는 당신의 말씀이다.

깡마르신 체격에 후즐근한 옷차림으로 한 푼이라도 절약하셔서 봉사하시려고 온갖 대소사를 걸어다니시면서 애쓰시는 할머니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 체격으로 남들을 씻겨드리시느라 애쓰시니 팔다리가 저리고 어깨가 아프지 않을 수 없고, 종일 걸어다니시니 허리며 무릎이 아프지 않을 수 없겠다.

치료비라도 받지 않아 보려고 간호사들과 함께 실랑이를 해보았지만, 오히려 낯간지러울 뿐이었다. 사다주시는 드링크나 감사한 마음으로 기쁘게 마셔야겠다.


치악산 자락에서

늘푸른 김윤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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