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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도 성도 모르는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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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972회 작성일 15-12-31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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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이름도 성도 모르는 이들.

  작성자 : 모란성심 … (221.163.125.89)     연락처 :      이메일 : house747@empal.com    날짜 : 03-12-18 12:35    

    조회 : 1299    


한 때 몇 년 동안 나는 도산로 근처에 있는 목욕탕에 단골로 다닌 일이 있다. 거기 단골이 된 이유는 순전히 그 집 때밀이 덕분이었다. 경상도 사투리를 짙게 쓰는 중년의 그 아저씨는 얼굴에 웃음을 띠거나 친절하게 사람을 맞거나 아는 체를 하거나 하는 그런 성격은 아니었다. 그러나 일단 그 아저씨에게 때를 한번 밀고 나면 그 집 단골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어떻게 그리 시원하게 그리 꼼꼼하게 그리 정성껏 남의 때를 밀 수 있는지 거의 불가사의할 정도다. 일하는 모습이 신명에 차있다.


그렇게 오랫동안 다니는 중에 한번도 낯을 찌푸리거나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는 걸 보지 못했다. 나 말고도 그 아저씨 때문에 그 목욕탕 단골이 여럿 있었던 걸 보면 이건 내 생각만은 아닐 듯 싶다. 어쩌다 누구하고 같이 다른 목욕탕에 가게 되면 도무지 시원하지가 않다. 그 아저씨와 너무 대조가 되어 때를 밀고 나와도 찝찝하기 이를 데 없다. 그래서 며칠 지나지 않아 꼭 다시 그 아저씨에게 가서 때를 밀곤 했다.


목욕을 하는 날은 몸이 깨끗해져서 기분이 좋기도 하지만 그 아저씨의 일하는 모습을 보는 즐거움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내게 몇 마디 말을 건네왔다. 여기를 떠나게 되었다고, 깜짝 놀란 나는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다. 옮기는 목욕탕으로 따라가리라고 순간적으로 마음 먹으며 던진 질문이었다. 그런데 그는 이 일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시작하려고 한다는 거였다.


그의 이야기가 계속되었다. 배운 게 없이 뒤늦게 서울에 올라와 이 일을 하며 결혼도 하고 아이들 낳아 학교 보내 공부시키고 있으니 자기는 이 일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고, 그래서 열심히 이 일을 해왔고 도저히 남들처럼 대충할 수가 없었노라고,


그런데 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가고 아버지 직업이 때밀이라는 것을 알고부터는 공부도 안하고 자기 말도 안 듣고 해서 속이 무척 상한다고, 여기 저기 알아 본 결과 인천에 있는 작은 회사 수위자리가 있어 벌이는 적지만 그 곳으로 옮기면 혹 아이가 나아질까 싶어 가기로 했다고, 이런 얘기였다.


아이는 그러다가 철들면 나아질 테니 걱정하지 말고, 남의 몸에 낀 때를 정성스럽게 닦는 그 마음으로 일한다면 어디 가서 무슨 일을 하든 잘 할 수 있으리라고 축하해주고 나는 내 명함 한 장을 건넸다. 나도 직장이 인천이니 몇 년 동안 내 때를 정성껏 닦아 준 인사로 식사나 한번 대접할 테니 연락하라는 말과 함께. 그 뒤 그에게서는 아무 연락도 오지 않았다.


내가 진정으로 그와 함께 식사라도 할 마음이 있었다면 옮겨가는 직장과 이름이라도 물었어야 했다. 명함을 건네며 한 얘기를 그냥 겉치레 인사쯤으로 들었던 게 아닌가 나중에서야 생각이 들었다. 목욕할 때 가끔 생각나는 사람이 이름도 성도 모르는 그 아저씨다.


금융쪽에 일이 많아 나는 여의도에 가는 일이 잦았다. 수산시장 앞 88도로와 인입도로가 합쳐지는 정체가 심한 구간에는 언제나 행상들이 많았다. 철 따라 아이스크림, 호도과자, 냉커피나 음료, 오징어, 뻥튀기 과자 등 파는 물건도 여러 가지였다.


팔 물건을 손에 들거나 어깨에 걸치거나 등에 지고 교통 체증에 걸려 멈칫거리는 차들 사이를 비집고 다니며 눈 뜨기도 힘든 매연 속에서 거의 곡예에 가까운 몸짓으로 장사하는 분들이 이들이다. 이들을 볼 때마다 고단한 삶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됐다. 봄 가을은 그런대로 좀 나은 편이고 한 여름 뙤약볕에서 땀을 흘리며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는 모습을 보며 에어컨이 돌아가는 차 안에서도 교통체증에 짜증 내는 내가 얼마나 한심한지를 생각하기도 했다.


기계에 눌러서 먹기 좋게 가공한 오징어를 파는 아저씨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밀집모자를 눌러쓰고 왼 손에 세로판지로 포장한 오징어를 열 댓 마리쯤 들고 오른 손 두 손가락을 펴서 2,000 원을 뜻하는 듯 V자를 만들어 가볍게 춤추듯 흔들며 오징어를 팔던 아저씨, 그 아저씨가 내 눈에 들어온 이유는 미소 때문이었다.


처음 몇 차례는 무심코 지나쳤지만 까맣게 그을은 그 얼굴 가득찬, 언제 보아도 한결같은 미소는 곧 내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아무 표정이 없거나 아니면 하루하루 힘들게 사는 모습이 역력한 사람들 가운데 미소를 머금은 단 한 사람, 오징어 아저씨는 두드러지지 않을 수 없었다. 언제부턴가 그 곳을 지날 때면 꼭 그 아저씨를 찾게 되었다.


오징어를 사기 위해서도 아니고 뭐 다른 목적이 있어서도 아니다. 그냥 그 아저씨의 좀 유머스러운 몸짓을 쳐다보며, 아, 저 아저씨 아직도 잘 있구나, 생각하면서 지나치고 마는 싱거운 일이었지만, 습관처럼 그 아저씨를 찾았다.


그 이미지를 떠 올리려면 백화점이나 대형 슈퍼마켓 입구에 가면 흔히 만나게 되는 도우미를 연상하면 된다. 날씬한 몸매에 깨끗한 유니폼을 입고 경쾌한 리듬에 맞춰 손과 발과 몸으로 춤추며 인사하는 도우미 말이다. 이들의 얼굴에도 미소가 가득하다. 그러나 잘못된 나만의 생각인지 모르겠으나 이들의 미소는 자연스럽지 못하고 어딘지 꾸민듯한 인상을 받는다.


어느 백화점에서나 누가 그 자리에서 안내하거나 판에 박은 듯 그게 그 모습이라 그런 생각이 드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내게는 자연스럽지 못하다. 미소가 좋기는 좋지만 억지로 지어서 보여주는 미소는 무표정보다 낫다고 할 수도 없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그런데, 속에서 우러나는 자연스런 미소를 띤 도우미의 모습이 바로 그 오징어 아저씨의 이미지였다.


나는 모른다. 무엇이 그에게 그런 미소를 가져다 줬는지. 그 아저씨의 속내에 어떤 생각이 감추어져 있었는지, 그 아저씨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그 어떤 것도 모른다. 아니 그런 거창한 일은 그만두고 그 아저씨가 하루에 오징어를 몇 마리나 팔았는지, 거기서 나오는 돈으로 먹고 살기나 했는지 조차도 몰랐다.


한번 그 아저씨에게서 오징어를 사겠다고 마음만 먹었지 실제로는 한번도 사지도 못했다. 그러나 그 아저씨의 모습은 내게 활기를 주었다. 저 더위에 저렇게 열심히 즐거운 마음으로 장사하는 힘이 어디서 나올까. 지금도 어디 가다 길이 막혀 행상들이 보이면 가끔 이름도 성도 모르는 그 아저씨 생각이 난다.


최근 천안에 자리 잡은 후 몇 달 안 되는 기간에 단골로 가는 음식점이 한군데 있다. 닭백숙이니 삼겹살 구이 같은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변두리에 자리잡은 보통 식당이다. 우연히 지나다가 그 음식점에 들러 식사를 했는데 그 집 여자주인이 좀 독특하다 싶었다. 명랑하고 쾌활하고 말도 잘하고 재미있었다. 그러나 그가 주인이 아니고 종업원이라는 말을 듣고 다시 한번 놀랐다.


주인이야 영업이 잘되면 신이 나게 되고 그런 순간에 사람을 만나면 실제 모습보다 밝게 보일 수도 있지만, 종업원의 생각은 또 다른 게 일반적이지 않은가. 알고 보니 그 식당 주인은 주방에서 얼굴도 잘 내밀지 않고 음식을 만드는 일에만 열중이었다.


수수한 차림에 인물이 빼어나지도 않지만 언제나 웃음 띤 얼굴, 그리고 언제 가도 밝게 맞이하는 마음, 투박하지만 반가움이 배어나는 말씨, 누가 보아도 그 여자는 그 집 주인이다. 그렇지만 사실은 종업원이다. 전형적인 충청도 아줌마로 퉁퉁하고 무뚝뚝하고 말수도 적은 그러나 두툼한 인심과 소박한 음식 솜씨로 그냥 주방에서 일만 하는 아줌마, 누가 보아도 그 사람은 주방 종업원이다. 그렇지만 사실은 주인이다. 이 둘이 경영하는 음식점에서 묘한 하모니를 보는 게 나는 즐겁다. 그래서 그 집을 드나들게 된다.


무엇이 그 아주머니의 마음을 그리 밝게 만드는지, 무슨 생각이 그를 그렇게 환하게 웃게 만드는지, 언제나 그리 행복해 보이도록 하는 비결이 어디에 있는지 나는 모른다. 언제 내가 다시 천안을 떠나 멀리 가게 될지 모르지만 어디 가도 그 집 아줌마의 밝은 모습은 가끔 생각날 게다. 이름과 성이라도 알아두는 게 좋을까?


이름도 모르고 성도 모르는 이 사람들, 이들이 있기에 우리는 삭막하지 않다. 이름도 모르고 성도 모르는 많고 많은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어떤 마음을 전하고 있는지 두려울 때가 있다.


글 쓰신분: 한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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