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의 원주민들은 마법사의 저주를 받으면 시름시름 앓다가 며칠 뒤에 숨을 거둔다. 1942년 미국 생리학자 월터 캐넌은 이러한 현상을 '부두 죽음(voodoo death)'이라고 명명했다. 부두는 서인도 제도에 있는 아이티의 원시 종교이다. 부두교의 주술사로부터 저주를 받고 죽은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부두 죽음 같은 일은 밀림이나 오지에 사는 원시 부족 사회에서나 발생하는 것으로 여기기 쉽다. 그러나 영국 주간지 '뉴 사이언티스트' 5월 16일자 커버스토리에 따르면 이와 유사한 사례가 선진국에서도 빈발하고 있다. 단지 마법사의 긴 주문이 의사의 짧은 몇 마디로 바뀌었을 따름이다. 이를테면 많은 환자들은 혹시 의사로부터 죽음을 암시하는 말을 듣게 되면 절망에 빠져 삶의 의지를 포기하기 쉽다는 것이다.
의사의 말이 환자에게 부정적인 감정이나 기대를 유발하여 아무런 의학적 이유 없이 환자에게 해를 입히는 현상을 '노시보 효과(nocebo effect)'라고 한다. 1961년 '나는 상처를 입을 것이다'는 뜻을 지닌 라틴어로 만들어진 노시보는 역시 라틴어에서 유래한 플라시보(placebo)와 정반대가 되는 개념이다.
플라시보, 곧 위약(僞藥)은 환자를 안심시키기 위해 주는 가짜 약이다. 위약의 투여에 의한 심리 효과로 환자의 용태가 실제로 좋아지는 현상을 플라시보 효과라 한다. 요컨대 플라시보 효과는 인체가 스스로 치유하는 능력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부흥회에서 복음 전도사의 설교를 듣고 환자들이 병이 치유된 것처럼 느끼는 것도 플라시보 효과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노시보 효과 역시 플라시보 효과처럼 임상 실험으로 확인되었다. '뉴 사이언티스트'에 따르면 수천명 환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15개의 노시보 효과 실험에서 25% 환자가 피로, 우울증, 성기능 장애 따위의 부작용을 나타냈다.
게다가 노시보 효과는 전염성을 지니고 있다. 영국 헐대 심리학자 어빙 커시는 수 세기 동안 원인을 확인할 수 없는 증상이 집단에 퍼진 사건, 곧 '집단 심인성 질환(mass psychogenic illness)'이라고 알려진 현상도 노시보 효과의 일종이라고 설명한다. 1998년 11월 미국 고등학교의 한 교사가 휘발유 비슷한 냄새를 맡고 두통, 호흡장애, 현기증을 호소했다. 학교는 문을 닫았으나 교사와 학생 100여명이 비슷한 증상으로 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하지만 질환의 원인을 밝혀낼 수 없었다. 단지 친구가 아픈 것을 본 뒤에 그런 증상이 나타났다는 결론을 얻었을 뿐이다.
어빙 커시는 대학생들에게 맑은 공기를 흡입시킨 뒤에 두통이나 메스꺼움을 일으키는 독소가 함유되었다고 거짓말을 했다. 실험 대상자의 절반에게는 한 여자가 공기를 마시고 그런 증상을 나타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여자가 고통을 느끼는 장면을 목격한 실험 대상자일수록 유사한 증상을 나타냈다. 집단 심인성 질환과 비슷한 현상이 나타난 셈이다.
노시보 효과의 실체가 밝혀짐에 따라 의사들이 하얀 옷으로 갈아입은 마법사가 되지 않으려면 환자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언행을 삼가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