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평균 6시간15분 ... 비만·노화의 원인 돼
우리나라는 만성 수면 부족 국가다. 미국 스탠퍼드 수면센터 오하욘 교수가 조사한 한국 성인의 평균 수면시간은 6시간15분. 이는 미국 7시간, 영국 6시간45분에 비해 크게 부족하다. 국내 조사도 다르지 않다. 고려대 안산병원 수면센터는 지난해 성인 남녀 3540명을 대상으로 수면 실태를 조사했다. 자신의 수면이 정상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50.6%에 불과한 1790명. 하지만 이들의 하루 수면 평균시간도 인간의 최적 수면시간인 7시간30분(영국학계 연구 결과)에 크게 못 미치는 6시간18분이었다.
수면장애를 호소한 사람의 수면시간은 더 짧았다. 습관성 코골이는 하루 평균 6시간, 주간졸림증은 5시간48분, 불면증은 5시간30분으로 나타났다. 더 큰 문제는 수면환경이 갈수록 열악해진다는 사실. 2, 3차로 이어지는 회식문화가 여전한 데다 교대 근무, 시간 차가 있는 외국과의 업무 증가, TV로 해외 스포츠를 시청하는 등 수면습관이 갈수록 나빠지기 때문이다. 청소년은 더욱 심각하다. ‘4당5락’이라는 말은 입시생에게 여전히 금과옥조다. 어린이라고 나을 게 없다. 영남대병원이 지난해 대구지역 초등학생 3506명의 수면시간을 분석한 결과 7세는 9시간(적정 수면 10시간), 12세는 8시간12분(적정 수면 9시간)에 불과했다.
교통사고 23%는 졸음운전 탓 체르노빌과 미국 스리마일섬 원전 사고는 수면 부족에 의한 인재였다. 졸음으로 인해 판단력이 무뎌진 기계 오작동이 원인이었다. 한국도로공사가 발표한 2007년 교통사고 원인은 졸음운전이 23.3%로 핸들 과대조작 17.2%, 과속 14.8%, 전방 주시 태만 13.3%보다 월등히 높았다. 졸음운전은 면허취소 수준을 훨씬 넘는 혈중 알코올 농도 0.17%의 음주운전과 같다는 것이 전문의들의 분석이다. 고려대 안산병원 수면센터 신철(호흡기내과) 교수는 “당국은 통계만 낼 뿐 수면 부족의 원인을 밝혀 치료를 유도하는 정책이 없다는 것이 더 심각하다”고 강조했다.
이미 미국 뉴저지주는 2002년 8월 5일 졸음운전 법안을 통과시켰다. 4시간 이내로 잠을 자지 않고 운전을 하다 졸음으로 사고를 내면 최고 징역 10년과 15만 달러의 벌금형에 처한다는 것이다. 일본도 졸음운전 방지법을 준비 중이다. 졸음운전으로 긴급 정차 사고를 낸 신칸센 고속전철 기관사가 평소 수면무호흡증에 시달렸다는 사실이 밝혀진 게 계기가 됐다. 만성 수면 부족은 건강에도 치명적이다.
삼성서울병원 수면센터 홍승봉(신경과) 교수는 “11명의 젊은 남녀에게 6일간 4시간씩 자게 한 뒤 혈액을 측정한 결과 포도당 대사 속도가 느려지고 코르티솔이 증가했다(‘란셋’ 1999년)”고 말했다. 부신피질에서 생산되는 코르티솔은 과잉 분비되면 혈당 증가, 면역력 약화, 골다공증, 지방 축적, 신체 노화 등 각종 건강상 문제를 일으킨다.
수면 부족은 비만에도 영향을 미친다. 영국 브리스톨대학은 1000명의 성인에게 수면시간을 10시간에서 5시간으로 줄인 결과 체중이 평균 4% 늘어났다고 밝혔다.
이들의 혈액을 분석했더니 식욕을 자극하는 그레린이 15% 증가한 반면 억제하는 렙틴이 15% 줄었다. 전문가들은 이를 바탕으로 수면시간을 1시간 연장하면 연 4.5㎏을 줄일 수 있다는 대안도 내놨다.
수면장애 원인 무려 80여 가지 고등학생인 박모(17·은평)군의 기상시간은 낮 12시. 아침 기상 때마다 부모와 한바탕 전쟁을 치르다 결국 학교마저 자퇴했다. 수면다원검사에서 나타난 박군의 수면장애는 뇌의 생체시계가 뒤로 늦춰진 수면위상지연증후군이었다.
박군에겐 저녁에 수면호르몬인 멜라토닌이 소량 투여됐고, 아침 기상 후 밝은 빛을 쪼이는 광선요법이 시행됐다. 수면부족은 나쁜 생활습관에서 비롯되지만 치료를 받아야 할 수면장애도 많다. 우리나라 국민의 수면장애 유병률(질환 발생비율)은 30% 선. 홍 교수는 “우울증과 같은 정신과적인 문제부터 수면무호흡증 등 이비인후과 질환, 생체시계가 혼란을 일으키는 일주기리듬 수면장애 등 80여 가지가 된다”고 말했다.
다행히 대학병원과 개원가에 수면클리닉이 늘어나 치료받을 수 있는 기회가 넓어지고 있다. 수면장애는 수면다원검사를 통해 정확하게 진단된다. 저녁 9시쯤 수면검사실에 들어가 아침까지 자면서 밤새 나타나는 인체 반응을 판독한다. 온몸에 센서를 부착하고 수면의 깊이·질·각성빈도·호흡량과 빈도, 호흡 시 가슴과 복부의 움직임, 혈액 산소포화도 등 100여 가지 정보가 분석된다. 비용은 50만∼70만원 선. 신 교수는 “수면 부족은 생산성뿐 아니라 타인의 안전까지 위협하는 사고의 원인이 된다”며 “충분히 잔 것 같은데도 낮에 집중이 안 되고, 졸립다면 이를 질환으로 인식해 반드시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